JTBC 프로그램 다크투어에서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 전설적인 스타 존레논과 마이클 잭슨에 대해서 다룹니다. 존레논과 마이클 잭슨의 죽음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존레논
전 비틀즈 멤버이자 세계 평화 운동가 존레논이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는데 광팬의 총격을 받고 쓰러졌을 때 존레논은 평화 운동, 감정 폭발 치료, 평범한 남편으로서 열심히 일상을 매진하다 폴 매카드니와의 관계 악화에서 비롯된 상처에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습니다.
역사상으로 가장 성공한 송라이터였으며 비틀즈 멤버로서 대중음악을 세계적인 현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존레논은 일본계 미국인 전위 예술가 오노 요코에게 빠져 자신이 쌓아 올린 업적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비틀지 멤버들은 자기들 사이에 까다로운 여자가 끼어들어서 참견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1970년 비틀즈가 공식적으로 해체하였고 존레논과 오노는 결혼하였고 뉴욕에 정착하여 살았습니다.
1980년 12월 8일 밤 10시 50분 존레논이 뉴욕 다코타 아파트로 귀가하고 있는데 몇 시간 전에 존레논에게 사인을 받아간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 이라는 팬이 접근하였고 채프먼은 소리 지르며 존레논을 부른 후에 등에 네발의 총을 쏘았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였을 때 존레는은 이미 숨져있었습니다.
존레논을 죽이라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한 범인 채프먼은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며 경찰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채프먼은 이 책의 주인공에게 강한 공감을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채프먼은 유죄를 인정하였고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마이클 잭슨
세계적인 팝스타 마이클 잭슨은 2009년 6월 25일 로스엔젤레스의 홈비힐스 인근 노스캐롤우드 드라이브 자택에서 프로포폴과 벤조디아제핀 급성 중독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의사 콘래드 머레이는 마이클 잭슨은 방에서 맥박이 약한 채 숨을 쉬지 않는 마이클 잭슨을 발견하였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합니다.
오후 12시 21분 911로 전화하였고 현장에서 구급대원의 치료를 받았지만 로널드 레이건 UCLA 메디컬 센터에서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전하였습니다. 2009년 8월 28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검사관은 마이클 잭슨의 죽음을 살인으로 결론지었고 마이클 잭신은 프로포폴과 항불안제 벤조디아제핀, 미다졸람, 로라제팜을 의사에게 투여받았고 의사 머레이는 2011년 과실 치사로 4년형을 선고받았는데 성실한 수형으로 2년만 복역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