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세계 다크투어에서 8.15 광복절을 맞아서 광복절 특집으로 꾸며진다고 합니다. 일본의 군함도 강제징용에 대해서 다룬다고 하는데 군함도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군함도는 행정구역상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에 소속되어 있는 섬이며 나가사키 반도 옆에 관광지로 유명한 다카시마 아래 조그만 섬이 2군데 있는데 하나는 나카노시마이며 또 다른 하나는 바로 하시마입니다. 생김새 때문에 군함도(군함섬)이라는 별칭으로 불렸습니다. 1950년대까지 다카시마와 같이 일본의 근대화를 떠받치는 광업도시로 번영을 이루었으나 폐광 이후에 주민들이 떠나면서 현재는 무인도가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강제 징용되어서 석탄을 캐기도 하였고 석유 때문에 석탄이 도태되면서 1970년대 이후 에너지 정책 영향을 받아서 1974년 1월 15일 폐광되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2000명으로 줄었던 주민들은 3개월 뒤 4월 20일 모두 섬을 떠났습니다.
책 안재성의 '신불산 : 빨치산 구연산의 생애사'가 있는데 경상남도 지역 빨치산(조선 인문 유격대) 대원인 구연산(본명 : 구연철)이 어린 시절에 군함도에 살았던 경험담이 잠시 언급되었는데 구연산은 자신은 광부인 아버지를 따라서 군함도로 와서 학교를 다니던 학생으로 광산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강제징용이 시작되기 전 군함도의 모습부터 나오는 진귀한 자료입니다. 구연철은 이후에 군함도 영화가 나와서 이곳에 대한 관심이 생겼을 때 증언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태평양 전쟁 당시에 많은 식민지 주민들과 전쟁 포로들이 군함도에 강제 징용되어서 끌려왔습니다. 그중에 조선인은 징용 및 요시다 합숙소 노동자가 다 합쳐서 500명~600명 정도였고 자의로 온 조선인 노동자가 추가적으로 80명 정도가 있었습니다. 1986년 일본 시민단체인 '재일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에서 사료로 제시한 화장 매장 인허증에 따르면 1925년~1945년 사이에 하시마 탄광에서 총 1295명이 숨졌고 이중에 조선인이 122명이었습니다.
섬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당시 조선인들은 들어가면 살아서 나올 수 없는 지옥문이라고 불렀고 섬 자체도 지옥섬 혹은 감옥섬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군함도에 한글로 낙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실제로는 그것보다 더욱 처참한 학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징용이 본격화된 그 시기에 한국어와 한글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처벌과 엄청난 학대를 받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미루어 봤을 때 글로 남기지도 못할 학대의 상흔이 남이 있는 곳임이 틀림없습니다.
2015년 7월 5일 독일 본 월드 콘퍼런스 센터에서 개최된 세계유산 위원회의에서 일본이 신청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 철강, 조선, 탄광' 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최종 등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유산에는 조선인 5만 7900여 명이 강제로 동원되었던 하시마 탄광, 나가사키 조선소 등 7개 시설이 포함되어 논란이 되었습니다.
일본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군함도와 관련되었던 역사를 왜곡하고 산업혁명의 상징성만 부각해서 홍보하여 대한민국 국민의 거센 공분을 샀습니다. 유네스코의 자문기관이 시설의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하라고 일본에 권고하였지만 일본은 권고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서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7년 7월 일제 강점기 당시 군함도에 강제 징용되었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영화 '군함도'가 개봉되어서 화제를 모은 적이 있습니다.